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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le An

[더 마터 오브 카타콤] 카타콤, 대신 찾아드립니다. - 3

안녕하세요? Nikki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카타콤의 역사와 함께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카타콤은 몰타, 시칠리아, 이집트, 튀르키예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로마 근교에 많이 분포해 있습니다.

오늘은 로마의 카타콤들이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 어떤 종류의 카타콤들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저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로 떠나보실까요~?✈️


로마 카타콤의 분포

오늘날 로마 근교에서만 60여 개의 카타콤이 발견되었는데요. 로마에서는 법으로 성 안에서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성 밖의 가도들을 따라 공동묘지들이 형성되었습니다.

카타콤들의 명칭은 초기에는 지역 이름이나 공동묘지의 소유주였던 가문의 이름을 따랐습니다. 그러다 교회가 지하 묘지를 관리한 뒤에는 성인이나 교황의 이름을 따라 지었습니다.



아피아가도 주변

성 칼리스토 카타콤과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 등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카타콤들은 보존이 가장 잘 되어있어 현재 일반인에게도 개방되고 있지요.


  • 성 칼리스토 카타콤 : 223년에 순교하여 이곳에 묻힌 제 16대 로마 교황 갈리스토 1세의 이름에서 명칭이 비롯되었습니다. 굴의 길이가 20km, 전체 면적이 15만m²에 이르며, 20m의 깊이에 4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파비아누스와 식스투스 2세 등 모두 9명의 교황의 무덤이 있습니다. 음악과 음악가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는 체칠리아도 순교한 뒤 이곳에 묻혔습니다.



  •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 :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근위병 출신 순교자 세바스티아누스의 이름에서 명칭이 비롯되었습니다. 이곳에는 한때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유해가 임시로 보관된 적이 있어, 오랜 기간 동안 성인과 순교자에게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성소로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트리글리아(Triglia)'라는 부속 예배실이 있어 순례자들이 베드로와 바울을 기리기 위해 '린프레시(Rinfreshi)'라는 음식을 함께 먹고 벽에 기도문을 새겨 놓기도 했습니다. 카타콤 내부는 다양한 미술 작품과 초기 기독교의 기념물로 가득 차 있으며,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기념일인 1월 20일에는 많은 이들이 이곳을 방문합니다. 이 카타콤은 초기 기독교 신앙의 깊이를 잘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아르데아티나 가도 주변

도미틸라 카타콤과 눈지아텔라 카타콤, 발비나 카타콤 등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 도미틸라 카타콤 : 로마 카타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지하 5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카타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조카딸인 플라비아 도미틸라가 교회에 헌납한 토지에 만들어져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는 더욱 확장되어, 통로가 매우 복잡하게 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9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되었으나, 19세기에 다시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는 4층까지 발굴되었습니다. 다만, 일반인에게는 2층까지만 개방되고 있습니다.


아피아 가도가 뭐야?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속담을 들어보셨나요?

로마 제국은 당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여러 지역으로 길이 통하도록 도로를 정비했습니다. 로마의 도로는 고대 로마의 성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도로 덕분에 로마 사람들은 군대 이동, 물자 교역, 소식 전달 등을 아주 용이하게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도로의 폭은 3~5m 정도로, 두 대의 마차가 나란히 지나갈 수 있는 크기였으며, 사각형의 돌로 촘촘히 포장되었습니다. 배수를 위해 경사가 있었고, 보행자 길, 교각, 배수 도랑이 측면에 있었습니다. 가도는 정확하게 조사된 코스를 따라 놓였으며, 일부는 언덕을 관통하거나 강과 계곡을 교량으로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가도는 전 세계 어느 지역을 둘러봐도 비길 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매우 선진적인 도로 체계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아피아 가도는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진 도로입니다. ‘길의 여왕’으로 알려진 아피아 가도는 로마와 남부 브린디시 항구를 연결하는 무려 560km에 달하는 길로, 도로 건설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고속도로 거리가 428km라고 하니, 그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시겠지요?

로마의 이러한 대규모 도로 시스템은 역설적이게도 복음이 전파되는 선교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은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들을 방문하고 그곳에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3차 선교 여행 경로를 지도에 그려보면, 당시 로마 제국의 주요 도로망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합니다. 그가 걸어간 여정은 이그나티아 도로와 거의 평행을 이룹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개척한 주요 교회들의 위치도 로마 간선 도로상에 있었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이후 기독교 박해 시기에도 이 도로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제자인 성 이그나티우스는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황제에게 숭배를 거절한 후 로마로 압송되며 2,900km의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이 도로망을 통해 거쳐간 도시마다 기독교 신자들에게 편지를 남겼고, 그것은 그가 지나가는 길마다 복음이 전파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로마 카타콤의 분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조사를 하다보니 로마에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것 같습니다. 카타콤과 로마의 도로에 대해 알아보며, 거대한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 세계의 역사 또한 담겨져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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