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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마터 오브 카타콤] 카타콤, 대신 찾아드립니다 - 1

Nicole An

안녕하세요? Nikki입니다.

저희 [Marbl]팀은 내년에 있을 뮤지컬 카타콤 준비에 한창인데요,

여러분은 카타콤에 대해 얼마나 들어보셨나요?

지하 공동묘지? 그거랑 교회가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거기가 뭐하는 곳인데?

저도 뮤지컬 준비를 하면서 카타콤이라는 것을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카타콤이라는 것이 생소하신 분들을 위해 제가 대신 이 카타콤에 대해 대신 검색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 시리즈는 총 13주간 연재될 예정이며,

이 책[조인형 (2013). 기독교 박해와 승리의 역사 로마의 카타콤. 하늘양식]을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책 내용과 함께, 궁금한 질문들을 가볍고 허심탄회하게 찾아가 볼 예정입니다~!💃






제 1장 카타콤의 기원과 의미


사진출처: https://www.rome.net/catacombs-rome

카타콤이 뭐야?

카타콤은 2세기에서 4~5세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하 공동묘지입니다. 이탈리아어로는 카타콤베(Catacombe)라고 하는데, 이는 ‘움푹 파인 곳’이라는 뜻을 나타내죠.

사실 이 카타콤을 기독교인들이 처음 만든 건 아니고, 이미 존재하던 무덤을 찾아내어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던 지하묘지를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었어요.


사진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카타콤

'카타콤'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로마의 아피아 가도 주변에 있는 지하무덤 체계였습니다. 이곳에는 베드로와 바울 사도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시신이 매장되었다고 전해져요. 기독교인들은 지형을 나타내던 ‘카타콤베’라는 말을 지하묘지를 가리키는 말로 쓰기 시작했고, 이 말은 점차 로마 주변에 위치한 기독교인들의 지하묘지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길게 뻗은 아피아가도(사진 출처: 나무위키)

카타콤처럼 지하에 굴을 만드는 방식은 지중해 지역의 고대 문화에서 폭넓게 나타났다고 해요. 몰타, 시칠리아, 이집트, 레바논 등 로마 이외의 지역에서도 카타콤과 같은 지하묘지 양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래 이 단어는 로마의 카타콤만을 지칭했지만, 18세기 파리의 카타콤과 같은 모든 지하 매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확장되었습니다. 로마 인근에는 약 60여 개의 카타콤이 발견되었는데, 그 길이를 모두 합하면 무려 900km에 이른답니다.


복잡한 카타콤의 지도(사진 출처: 사진 출처: https://pin.it/3orEU970X)


카타콤이랑 교회랑 무슨 상관이야?

카타콤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단순한 공동묘지로서만이 아니라 신앙의 중요한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당시 모든 로마의 카타콤은 도시 성벽 밖에 위치했는데, 이는 도시 내에서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카타콤은 기독교 박해가 극심하던 시절, 그들에게 가장 안전한 예배 장소가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portfolio/JonnyJim?mediatype=illustration

사람이 죽으면 지하의 묘실에서 종교 의식이 치러졌고, 기일에는 죽은 자를 위한 의식도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카타콤에는 커다란 방과 예배실이 있어서 성인과 순교자에게 기도를 올리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어요.


기독교인들은 기도문이나 사도와 성인의 모습, 성서에 관한 그림을 벽에 그려 놓았습니다. 카타콤은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고 비밀 통로가 있어서 박해나 소요 사태가 닥쳤을 때 피신처로 이용될 수 있었습니다.


카타콤 내부에 새겨진 비문 (사진 출처: https://devourtours.com/tours/rome-catacombs-after-hours/)

카타콤에 새겨진 선한 목자 벽화 (사진 출처: https://pin.it/34KsjG1pd)


초대교회는 언제를 말하는 거야?

초대교회, 또는 초기 기독교는 기원 후 약 30년 경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유대교와 분리된 초기 기독교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4세기경(기원후 380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의미한답니다.

사진 출처: https://pin.it/2hSJ45WJH


로마는 왜 기독교를 박해했을까?


사진 출처: https://pin.it/I354i6V2Q

1-2세기 초에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황제 숭배를 거절하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이에요. 당시 로마에서는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이는 국가의 통합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어요.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숭배를 거부하면서 정치적 위험 요소로 여겨졌고, 로마 사회에서 무신론자로 인식되었어요.

게다가 그리스도인들은 비밀스럽게 모임을 가지며 신앙 생활을 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이들의 행동이 더욱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식인"과 "근친상간"과 같은 거짓 소문이 퍼지면서 그들의 사회적 고립이 더욱 심화었어요. 이러한 요소들은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에 대해 정치적으로 위험한 집단으로 보이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미움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답니다.



🤔 여러분은 카타콤에 간다면 어떤 기분을 느낄 것 같나요?

오늘 살펴본 것처럼 카타콤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과 신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카타콤의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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