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미팅 중 더해진 추상적인 아이디어들로 피아노 가이드 작업을 시작했다.
피아노 가이드 작업은 단순히 미디로 피아노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다른 악기가 들어가는 자리를 충분하게 마련하고
전체의 흐름이 피아노 하나만으로도 읽히게끔 만드는 작업이다.
말 그대로 이 작업에서 밑그림이 섬세하고 촘촘하게 그려져야 한다.

가이드한 작업물을 오디오 파일로 뽑아 함께 모니터를 했다.
한 곡은 자연스럽게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고,
인물의 톤으로 즉흥 대사를 펼치게도 되고, 상상 속의 악기를 입술과 동작으로 연주하게도 되고,
몸짓으로 표현하게도 되었고, 다른 한 곡은 가만 듣고 있게 되었다.
더 고민할 것 없이 몸을 쓰게 되는 곡은 다음 단계로 넘기고, 아닌 곡은 다시 작업하기로 했다.
그림이 그려진 정도가 몸으로 훅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곡의 구성이 감각으로 느껴지면 구체적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을지라도
곡이 훨씬 풍성해진 채 머릿속을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업을 마치고 참여한 카타콤 모임에서는 대본 리딩이 있었다.
모두가 돌아가며 읽는 자리에서 처음엔 쑥스러워 멋쩍게 읽었다.
그런데 점점 새로운 호흡이 내게 생기는 것을 느꼈다.
눈으로 여러 번 읽고, 누가 읽어주시는 걸 몇 차례 듣기도 했었는데 내 입술을 써서 읽어보니 완전히 달랐다.
각 인물이 더욱 풍성하게 살아나고, 어떤 마음으로 이 말들을 뱉었을지 더 깊이 헤아리게 되는 느낌.
더불어 음악에 대한 입체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몸을 써서 작업한다는 건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일 같다.
덕분에 작업에 조금 더 깊이 젖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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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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